[이영문의 영화읽기] 영화 '개 같은 내인생'과 '길버트그레이프'

지난 연말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보름동안 많은 얘기를 하고 영화도 함께 보며 1년 이라는 시간동안 그들에게 많은 성장이 있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요.

여행은 언제나 자기를 향한 정직한 귀환(歸還)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여행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자기인식과 성찰이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의 일상생활 변화를 생각하며 오늘은 인간성장과 여행에 대한 영화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또한 우리 시대의 일상사를 조용하게 그리고 있는 한 스웨덴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하려고 합니다.

라세 할스트롬은 스웨덴 방속국의 프로듀서로 일하다가 1980년대 후반 「개 같은 내 인생(Life as a Dog)」이라는 유년기의 성장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당시 각 나라의 영화제에 초청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라세 감독은 연령에 따른 성장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습니다.

1993년의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 1999년의 「사이더 하우스(The Cider House Rules)」, 2000년의 「초콜렛(Chocolate)」, 2002년의 「쉬핑뉴스(The Shipping News)」에 이르기까지 라세의 영화는 모두 인간 성장과 여행 혹은 일상의 변화와 자기에게로의 귀환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라세 감독의 초기 두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개 같은 내 인생」은 병으로 죽어가는 엄마와 이미 집을 나가버린 아빠를 둔 12살짜리 꼬마 잉그마의 눈으로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자기만큼 나이를 먹은 개 한 마리와 여자친구가 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고향 마을에서는 아무도 잉그마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엄한 학교 선생님도 짓궂은 형도 동네 할아버지도 모두 그를 미워하고 놀립니다. 이제 엄마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그를 더 이상 안아줄 수가 없습니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대화하고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철학을 얘기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이지요.

여름이 오기 전, 엄마의 병이 점차 나빠지고 잉그마는 삼촌네 집으로 내키지 않은 여름여행을 갑니다. 병약한 엄마와는 달리 유머있고 생동감 있는 삼촌집에서 그는 스웨덴의 역사와 풍물과 또래 친구들과 축구를 배우게 됩니다. 삼촌이 만든 초라한 여름별장에는 꿈과 희망이 있습니다.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며 삼촌은 인생을 이야기해줍니다 - "이 세상에서 네가 가장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모두가 잉그마에게 관심을 가지고 잘해주지만, 이런 세상을 엄마와 강아지가 없는 삶과 바꿀 수는 없지요.

지금은 웃지 못하는 엄마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환하게 웃던 어린 날의 엄마가 이미 마음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지나가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엄마는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정말 개 같은 인생입니다. 겨울이 돌아오고 그는 다시 삼촌집이 있는 기차역에 내립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수북이 쌓인 눈이 있고 이제는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이지요. 지난 여름여행이 이제는 그의 유년기의 종착역이 되었습니다.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는 사이 잉그마는 이미 어른으로 성장하고 봄을 다시 기다립니다. 60년대 스웨덴 농촌마을의 일상을 잔잔한 영상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라세 감독의 자서전과도 같습니다.

라세의 또 다른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는 청년의 성장영화입니다. 최근 「캐리비언의 해적」으로 낯익은 조니 뎁이 길버트로 열연하고 이제는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15세의 나이로 정신지체를 가진 동생으로 출연합니다.

아버지의 자살이후 우울증과 거식증에 걸려 몸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비만상태가 된 엄마와 정신지체 동생을 둔 길버트는 식료품 가게의 점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가 사는 곳은 무료함이 일상화 된 곳이며 길버트를 성적도구로 이용하는 유부녀와의 불륜마저도 지루하고 따분한 곳입니다.

길버트는 여름마다 캠핑을 오는 외지의 사람들을 동경하며 그들을 따라 이 마을을 언젠가는 떠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몰라도 일탈만이 그에게는 희망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 곳으로 여행을 온 여자친구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통해 길버트는 자기를 인식하게 되지만 그 마을을 떠나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죽은 엄마를 오래된 집과 함께 화장하고 나서도 길버트는 동생을 데리고 그 마을에 다시 살아가게 됩니다. 일년이 지나고 여름이 어김없이 찾아왔을 때 여자친구가 돌아옵니다. 그녀에게서 이번 여행은 자기에게 정직한 귀환이 됩니다. 여자친구의 모바일 트레일러(이동하며 캠핑하는 집)를 기다리는 동안 들려오는 조니 뎁과 디카프리오의 흥겨운 음성이 우리를 들뜨게 합니다.

비록 자신이 꿈꾸던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못했지만 길버트는 불행했지만 따뜻했던 엄마를 떠나보내며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자기인식을 일깨워주는 여자친구가 이제는 함께 존재하게 되는 행복을 누리면서 말입니다.

두 작품 모두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주제는 사람들의 떠남과 돌아옴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개 같은 내 인생」에서는 꼬마가 여행의 주체지만 「길버트 그레이프」에서는 여자친구가 여행의 주체입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두 영화 모두에서 아버지는 존재가 없거나 이미 죽은 상태입니다.

이 점은 많은 심리학적 갈등을 자연스럽게 예고합니다. 아버지가 없이 성장하는 아이들(Fatherless Children)의 특징은 나이에 비해 책임감이 강하고 또래에 비해 정서적으로 어두운 측면을 가집니다.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그들을 움츠리게 하고 믿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또래들이 지니지 못하는 삶의 역동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지요. 세상을 너그럽게 보지는 못해도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당위성을 꿰뚫고 있으며 작은 소용돌이에 놀라지 않습니다. 두 작품 모두에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 같은 이유입니다.

아버지가 없고 엄마가 아프고 영화가 끝나기 전 부모는 모두 돌아가시거나 존재하지 않지요.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고 절망을 느낄 겨를도 없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로 귀환해야 합니다. 철저한 자기인식의 깨달음이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자연(自然)을 이야기합니다. 언제나 희망은 절망 속에서 진실된 가치를 지니고 상처받지 않은 인생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성장해 간다는 것이지요.

라세 할세트름의 영화에서 여러분들이 이미 느끼시다시피 여행은 우리 인생의 순환을 의미합니다. 또한 유년기에서 청년기로 혹은 청년기에서 다시 어른으로 우리는 여행을 떠나고 돌아옵니다.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자의 죽음은 우리를 고통에 빠뜨리고 잠시의 방황을 거쳐 인간 영혼의 밑바닥을 경험하게 합니다. 더 이상 고통 받을 수 없는 깊은 절망의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회복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두 영화는 모두 여름동안의 여행이 그려지지만 우리는 이제 겨울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여행을 왜 떠나야 하는 지를 한 번 더 설명하며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일상의 실타래를 푸는 두 가지 방법 중의 하나는 엉킨 실과 밤낮으로 씨름하며 한 올씩 푸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날카로운 가위로 엉킨 실을 잘라내는 것이지요. 바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여전히 엉킨 실을 움켜잡고 있으실 분들은 이 영화를 구태여 보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 한편으로 여행을 떠나실 분들은 다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여행은 언제나 정직한 자기 귀환을 전제로 한다”

좋은 여행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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