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문- 영화 ‘피에타(Pieta, 2012, 한국)’

저는 요즘 어느 재미있는 광고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엄마가 왜 더 설레는지, 남자들은 왜 세 명만 모이면 의형제를 맺는지, 여자아이는 왜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하려고 하는지, 왜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는지, 가족 같은 직장이 왜 필요한지.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모든 것에 대한 이유가 행복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곳, 바로 가족에 대한 행복을 강조한 것으로 귀결됩니다.

또 다른 현상도 있습니다. 긍정심리학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정의가 무엇인가라는 사회이념에 기반 한 강의가 유행하는 한편, 인간이 과연 무엇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진부하지만 가장 중요한 주제가 또한 만연합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으로 기쁘고 슬퍼지는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다가 죽을 것인가? 행복에 관한 많은 주제들이 21세기 시작부터 전 세계에 공명되고 있지만, 우리 주변은 온통 불행의 연속입니다.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영화는 인간의 운명과 불행에 대한 변주곡으로 기억될 법한 김기덕 감독의 최신작 ‘피에타(2012, 한국)’입니다. 한국 영화계의 이단자, 폭력영화의 대부, 고집불통 감독, 반항아, 기린아 등으로 불리는(실제와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을 기자들은 펜끝에서 잘도 그려내지요) 김기덕 감독은 이번 영화로 깐느 영화제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영화사상 처음이지요. 순식간에 언론의 조명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단아’라는 지극히 분리적 언어는 ‘창조적 파괴자’ 혹은 ‘파괴적 창조자’라는 애매모호한 언어로 둔갑했으며, 그의 작품세계를 둘러싼 재평가가 한창입니다. 영화관에는 ‘피에타’를 얼마만큼 연장하여 상영하는가 하는 문제로 예술영화관이냐 아니냐 하는 시시콜콜하고도 조잡한 경쟁이 있기도 했습니다. 즐겁지만 씁쓸한 이야기들입니다. 결국 자본의 탐욕에 사로잡힌 영혼들의 짬짜미를 김기덕이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왕따 시킨 결과가 깐느 영화제 수상이라는 결과가 된 셈입니다.

모두가 잘 아시는 것처럼 ‘피에타’는 구원과 용서에 대한 영화입니다. 죽은 예수의 몸을 떠받치고 비탄에 잠겨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영화 포스터의 기본 구조로 만든 것부터 철저하게 지난 15년의 세월동안 일관되게 김기덕 감독이 추구한 여성상에 의한 남성상의 구원과 용서가 촘촘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영화의 기본 구도는 전형적인 선과 악, 남성과 여성, 증오와 복수, 구원과 용서라는 이분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하수인으로 살아가는 강도(이정진 분)에게 스스로를 엄마(조민수 분)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태어난 이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묘한 감정에 점차 강도는 이끌려가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엄마의 존재가 공허감과 공포로 다가오면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김기덕표 영화가 그렇듯이 갈등이 생기면서 선과 악의 이분구도는 경계선이 없어져 버립니다. 갑자기 나쁜 일이 하기 싫어지는 강도를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강도의 패악질에 의해 손가락을 잃었거나 삶의 기반을 빼앗긴 희생자들은 가해자로 절대악을 범하는 사람들로 변질됩니다. 예로부터 위선과 위악의 개념이 있습니다. 위선은 악함을 가장한 선함을 의미합니다. 위악은 선함이 드러난 악함입니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점차 강도는 위악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엄마는 이제 위선의 상징이 됩니다. 그러나 이분법으로도 허물 수 없는 성역이 존재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증오와 복수의 파도 속에 숨겨져 있는 따뜻함과 포근함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힘입니다. 더 이상 미워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우리는 사람을 용서합니다. 사실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용서라는 틀을 빌리는 것이지요.

엔딩신을 향해 가는 절정의 미장센 하나가 우리 모두의 기억에 남을 겁니다. 바로 엄마와 강도와 그리고 또 다른 아들이 나란히 땅에 누워있는 장면입니다. 아마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걸작 ‘희생’이 떠오를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김기덕 감독은 한번 더 비틀어 또 다른 엔딩신을 만듭니다. 새벽길에 피의 십자가가 그어지는 장면을 만들어냄으로써 강도(이정진 분) 스스로 회개하는 철저함을 보입니다. 저는 이제 김기덕 감독이 타인들에게 많이 친절해지고 너그러워짐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몰랐던, 아니 블록버스터에 목마른 자본의 탐욕 때문에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김기덕의 휴머니즘을 이번 영화는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는 것은 이렇게 불행과 행복, 구원과 용서가 어우러져 돌아가는 바퀴와 같은 모양입니다. 일전에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정신증을 앓은 분에게 질문을 했었습니다.

충배씨는 행복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몇 번의 부정이 있었지요. 스스로 부정을 하지 않으면 제가 정신증을 앓았다는 사실에 너무 괴로워하게 됩니다. 수많은 자기기만과 부정을 통해 조그만 행복이라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자기 부정을 하지 않으시는지요?

큰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역시 행복 또한 자기부정과 일상의 괴로움에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김기덕 영화를 보고 느끼는 삶의 모순과 아주 절묘하게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기덕을 너무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법정스님의 말씀을 굳이 빌리자면, 이해하니까 오해하게 되는 겁니다. 세상 모든 일에 이해와 오해가 공존하는 것이니까요. 아름다운 계절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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