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문-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Dear Doctor, 2009)'

거짓말이 하늘을 찌르는 시대를 우리는 건너가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나라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합니다. 아니 보통사람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의도적으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합니다. 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요?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거짓말에는 뚜렷한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개체발생의 의미로 본다면, 그것은 생존에 대한 본능이 그 목적입니다. ‘거짓말의 발명(Invention of Lying 2009)'이라는 영화는 그 거짓말의 탄생을 유머러스하게 그립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려는 일본의 신예 여성감독 니시카와 미와가 만든 ‘우리 의사 선생님(2009, Dear Doctor)’은 우리에게 진실과 거짓의 구분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짜이기를 바라는가를 묻는 영화입니다. 잠시나마 한적한 시골마을의 명의로 살아가던 이노(쇼후쿠데이 쓰루베 분, 일본의 국민배우)의 갈등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가 사람들을 만납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실종된 의사 선생님인 ‘이노’가 온 것으로 착각을 하지요. 그러나 그는 그날 오후부터 마을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형사들이 수사를 진행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노의 안전을 걱정하고, 자신들의 병을 누가 돌봐주냐고 한탄합니다. ‘이노’의 참된 의술에 감동받은 젊은 의사 ‘소마’는 자신도 ‘이노’처럼 시골의사가 되어 마을사람들을 지켜가리라 다짐합니다. 그러나 ‘이노’는 의사의 아들임에는 틀림없지만, 의과대학을 졸업한 진짜 의사(면허가 있는 의사가 정확한 표현입니다)가 아닙니다. 4년간 이 마을의 명의로 살아 온 그였기에 마을 사람들의 분노가 예상되지만, 미와 감독에게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일은 정작 중요하지 않은 가 봅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믿는 현실에 대한 몽환적 진실을 살짝 드러내는 일입니다. 자기 정당화 혹은 인지 부조화 이론이라고 알려져 있는 심리학적 견해를 비틀어 사람들의 의식이 마비되어 있음을 알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고 현재 바라보는 것이 모두 진짜라고 믿는 것은 아닌가? 실루엣처럼 느껴지는 한 가닥 진실이라는 것도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져버리는 신기루와 같은 가짜는 아닌가? 정작 가짜 의사와 진짜 의사의 경계는 무엇인가?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동안 관객들은 ‘이노’가 펼친 4년간의 인간에 대한 헌신과 애정이 의사면허증의 유무로 가짜로 구분되는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집니다. 구체적으로는 극적으로 그가 진짜 의사였으면 합니다. 이 영화를 저는 의사인 아내와 같이 보았습니다. 텅 빈 객석에 의사 2명이 관객으로 앉아 있고, 스크린에는 진짜 의사를 연기하는 2명의 남녀가, 그리고 가짜 의사지만 진짜보다 더한 인간애를 지닌 ‘이노’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 두 명의 진짜 의사들은 가짜 의사 ‘이노’를 통해 의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마치 의료의 본질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현실을 보고 본래의 직업적 소명을 찾아가는 동화와 같은 착각을 합니다. 객석에 앉아 있던 현실의 한국인 의사 2명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드물지만 어떠한 행위의 진정성을 위해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존재한다’는 명제는 거짓말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노’가 필요해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의사로 만들어 갔고, 그는 헌신적인 의사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아름다움, 사랑하는 힘이 긍정적 필요성에 의해 보존되어 온 것이라면, 미움, 악, 거짓말 또한 다른 필요성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거짓말에 대한 스스로의 자각과 부끄러움이 동반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깨닫고 부끄러워 할 수 있고, 그 거짓말을 교정할 신념이 존재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영화속 ‘이노’는 분명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부끄러워 하고,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거짓말에는 어떠한 진정성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대의적 명분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에만 기댄 채 안하무인의 태도로 일관합니다. 그들에게 민중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발표, 4대강 밀어붙이기, 세종시 논란의 중심에 거짓말이 있습니다. 가짜 의사 ‘이노’가 벌인 거짓말은 사람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명박 정부의 거짓말 덩어리들은 민중들의 삶을 짓밟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의 죽음마저 부정하는 파렴치한이 될 것입니다. 세상 어디나 진실과 거짓은 공존합니다. 절대 진리와 표상의 거짓 사이에서 고민하시는 많은 분들에게 이 영화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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