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문 - 영화 ‘굿바이(일본, 2008)’

언제부터인가 살아가는 일 못지않게 아름답게 죽어가는 일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자살예방에 관계된 일을 하면서부터 생긴 또 다른 관념이기도 합니다. 자살에 대한 생각이 가득한 사람들에게 생명의 가치를 깨우치려는 프로그램을 떠올리다가, 문득 푸른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다가 다시 사라지는 광경을 보게 되었지요. 혼자 중얼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래, 흐린 날에도 태양이 있구나. 삶과 죽음이 교차할 수 있다는 당연한 상식에 새삼 놀라게 되었고, 죽음 이후의 삶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언젠가 죽게 되어 있지만, 우리는 늘 그 죽음을 부정하며 혹은 망각하며 살아갑니다. 삶과 죽음의 방정식이 한 번쯤은 난해한 공식으로 누구에게나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삶과 죽음에 대한 소시민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납관사(우리나라에서는 ‘염쟁이’라는 말로 오랫동안 써왔지요)‘라는 직업을 통해 일깨우는 영화, “굿’바이(Good and Bye, 일본, 2008)”입니다. 굿과 바이 사이에 ‘그리고’를 뜻하는 ‘and'가 있음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 분)’라는 젊은 첼리스트가 있습니다. 6살 때 아버지가 가출한 이후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감수성이 가득한 첼리스트입니다. 유년시절의 추억이 있는 시골의 한적한 집과는 물리적 거리가 아주 먼 동경에서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어릴 적 꿈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 분)가 함께 있는 그의 삶은 영원히 행복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오케스트라는 해체되고, 저녁반찬에 올라온 문어를 강가에 방생하면서 문득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방생되는 문어를 보며 1억원이 넘는 첼로를 팔고 그동안 자신을 옭아맨 음악가로서의 꿈을 접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집나간 아버지를 그리며 운영하던 조그만 카페에 새로운 짐을 풀며 직업을 찾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일하게 된 ‘납관사’라는 직업은 또 다시 다이고의 삶을 뒤흔들게 됩니다. 며칠 동안 썩어버린 시체앞에서 구역질을 하고, 아내에게 자신의 직업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지만, 점차 아름다운 죽음을 만들어주는 납관사의 의무에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아내와의 갈등과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다이고의 삶을 위협하지만,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을 보며,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는 가족의 죽음을 직면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조용히 얘기합니다. 일찍이 ‘비밀(일본, 2004)’을 통해 딸과 어머니의 환생을 경험시킨 다키타 요지로 감독이 이번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에 초점을 둡니다. 죽은 사람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얼굴에 화장을 칠하는 과정이 매우 심도 깊게 담겨져 있습니다. 납관사라는 직업이 우리나라에는 그저 ‘염장’이라는 하찮은 일로 매도되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본 납관사 혹은 염장들의 세계는 죽음을 통한 새로운 삶에 대한 안내자로서 묘사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직업으로서 다이고는 긍지를 갖게 되고, 자신의 아버지와 목욕탕 주인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사람에 대한 진정한 배려와 용서를 배우게 됩니다. 아버지를 30년만에 시신으로 접하게 되고, 그의 손에 마지막까지 들려있던 조약돌을 보게 되지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배운 ‘돌편지’가 떠오릅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 돌의 감촉과 무게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서로 건네는 것입니다. 다이고가 작고 미끈한 조약돌을 아버지에게 주었는데, 아버지는 당신의 주먹보다 더 큰 묵직한 돌을 주십니다. 그날 강변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다이고가 있었고 그것이 마지막 가족 산책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운영하셨던 카페의 이름이 ‘화(和)’라는 사실 또한 인간에 대한 용서를 뜻하겠지요. 첼로 케이스에 담겨 있는 작은 돌 하나. 첼로가 흔들리지 않도록 아버지가 고정해놓은 것입니다. 브람스를 연주하며 다이고는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을 함께 합주합니다.

고향 마을의 목욕탕과 변하지 않은 온기, 아버지가 남긴 브람스의 음악들과 함께 춥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겨울. 납관사 광고는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영원한 여행의 도우미.

그렇습니다. 다이고는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했지요. 어느 누구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한 사람이 납관사가 된 것은 누군가 자신을 시험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차갑게 식은 사람을 치장하여 영원한 아름다움을 주는 행위. 그것은 냉정하면서도 정확하고 동시에 따스한 애정이 넘치는 일입니다. 고요와 평화로움 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손놀림이 매우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향해 나가는 문이라고 정의합니다. 삶과 죽음의 방정식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이 영화의 음악은 히사이시 조가 맡았습니다. ‘봄날은 간다’의 사운드를 만든 그의 솜씨를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보너스가 있습니다.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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